🧬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가장 냉정한 질문 — 정유정 『종의 기원』 리뷰
👀 왜 우리는 악에 끌리는가?
정유정 작가의 소설 『종의 기원』은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사이코패스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심리 스릴러입니다. 그간 그녀가 발표해온 작품들이 사회적 문제와 인간 내면을 다뤘다면, 이 소설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인간의 ‘악’ 그 자체를 탐구합니다.
제목인 ‘종의 기원’은 찰스 다윈의 유명한 저작에서 따왔지만, 여기서 다루는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라 도덕과 본능 사이에서의 내면 진화 혹은 퇴화입니다.
읽는 내내 숨이 턱 막힐 만큼 몰입감 있는 전개, 한없이 냉정한 주인공의 시선, 그리고 독자의 도덕 감각을 정면으로 뒤흔드는 이야기. 『종의 기원』은 단순한 스릴러 소설 그 이상입니다.
🧪 줄거리 요약 (스포일러 없음)
주인공 한유진은 신경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입니다. 뇌와 인간 행동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는, 어느 날 어머니가 계단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유진은 자신이 그 사건 전후의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며 혼란에 빠집니다.
기억의 공백, 들끓는 감정,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상한 반응 속에서 유진은 점점 자신이 ‘정상’이 아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숨겨진 ‘본성’을 마주하게 되죠.
이 소설은 전개상 명백한 ‘살인 사건’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보다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합니다.
🧠 인물의 심리 구조를 따라가는 ‘어두운 탐험’
『종의 기원』은 기존의 미스터리 소설과 다르게, 독자가 범인을 추리하는 구조보다는 범인의 시선으로 사건을 해석하게끔 만듭니다.
한유진은 지극히 차분하고 논리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독자는 점차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 단단히 ‘어긋난 감정’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의 논리는 언제나 매끄럽고 정확하지만, 감정이라는 영역에서는 결핍이 드러납니다. 이 감정의 결핍이 결국 인간성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핵심이 됩니다.
정유정 작가는 유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는가, 아니면 악하게 길들여지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어느 쪽도 아닌, 우리가 스스로 외면해왔던 본성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찜찜한 결론으로 이어지죠.
🔍 소설의 미학 — 차가운 문체와 섬뜩한 통찰
이 작품은 문체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마치 실험실의 보고서를 읽는 듯한 냉철한 문장은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줍니다.
또한 소설 곳곳에 배치된 신경과학, 진화심리학, 생물학적 지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유진의 사고를 지탱하는 근거로 작용하며,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특히 유진이 인간을 '진화 실패작'처럼 바라보는 장면들에서는 독자도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인간이란 과연 이성적 존재인가? 아니면 충동에 의해 조정되는 감정의 집합체인가?
🎯 『종의 기원』은 어떤 독자에게 어울릴까?
- 몰입감 있는 심리 스릴러를 찾는 독자
- 사이코패스, 인간의 어두운 심리에 관심 있는 사람
- 미스터리보다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싶은 분
- 정유정 작가의 이전 작품을 좋아했던 독자
『종의 기원』은 빠르게 읽히지만,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생각이 머무는 책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다면, 분명 깊은 여운을 남길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