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기대하게 되는 작가가 있다. 섬세한 문장, 고요한 울림, 그리고 치열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색하는 시선.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런 한강의 세계관이 응축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억이고, 애도이며,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현실’에 대한 기록이다.
■ ‘잊지 않겠다’는 문장보다 더 깊은 이야기
소설은 세월호 이후, 실종자 가족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그 상처를 바라보는 한 인간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추모나 고발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묻는다.
주인공은 실종자의 가족을 친구로 두고 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갑작스레 혼수상태에 빠지고, 주인공은 친구의 집에서 그녀의 흔적과 이야기를 더듬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개인의 슬픔을 넘어, 집단적 상처, 기억의 책임, 그리고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폭력의 역사다.
■ 고통을 기억하는 방식, 문학의 몫
한강의 문장은 언제나처럼 절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서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낮은 숨결로 말한다.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이 고통을 말하겠다"는 외침은 드러나지 않지만, 독자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고요한 분노와 연대를 느낀다.
이 책은 죽은 자가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다. 끝나지 않은 사건, 설명되지 않은 감정, 해명되지 않은 진실. 그것들이 켜켜이 쌓여 ‘작별조차 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든다. 그렇기에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저항이자 다짐이다.
■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애도
한강은 이 소설에서 세월호라는 명확한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는 이야기 속 단서들, 이름 없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문학적 은유와 상징이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느낀 건, 작가는 단지 이야기꾼이 아니라 ‘기억의 기록자’라는 점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바라보는 문학의 책임감을 보여준다.
■ 지금, 우리에게 이 소설이 필요한 이유
현대사회는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잊히는 속도는 뉴스보다 빠르고, 사람들은 더 이상 같은 감정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작별하지 못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문학이다. 고통에 말 걸고, 기억을 붙잡고,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마음. 이 소설은 바로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읽고 나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조용히 되뇐다. 나도, 작별하지 않겠다고.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사회적 아픔과 인간의 기억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분
- 한강 작가의 섬세한 문체를 좋아하는 독자
- 말하지 못한 감정을 문학으로 위로받고 싶은 사람
-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를 문학적으로 성찰하고 싶은 분
✍️ 마무리하며
『작별하지 않는다』는 문학이 어떻게 ‘기억의 기록자’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겁고 아픈 이야기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 기억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는 그 끝나지 않은 기억을 계속해서 말해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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