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과 기억의 미로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남는가
오늘 소개할 책은 단 하루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삶 전체를 되짚는 독특한 소설,
바로 **서맨사 하비의 『궤도(The Orbit)』**입니다.
제목 ‘궤도’는 무언가를 도는 것, 혹은 떠나는 것을 의미하죠.
이 소설은 실제로 죽음 직전의 의식을 떠도는 한 여성의 기억과 사유를
한 편의 시처럼, 꿈처럼 펼쳐냅니다.
🧠 이 책, 어떤 이야기인가요?
주인공은 교사로 평생을 살아온 한 여성.
책은 그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바로 그 날,
병원 침대 위에서 정신과 기억을 떠돌며 과거를 되짚는 24시간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회고로 흘러가지 않아요.
그녀의 기억은 뚜렷하지 않고, 감정은 모호하며,
삶 전체가 ‘진실’과 ‘왜곡’ 사이를 부유합니다.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믿고 싶은 나를 상상하는가."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은 놀라운 문학적 실험을 시작합니다.
⏳ ‘시간’이란 무엇인가?
『궤도』는 시간을 직선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기억은 앞뒤가 없고,
사건은 명확한 원인도 결과도 없이
그저 ‘떠오르고’, ‘스며들고’, ‘흘러갑니다’.
책을 읽는 독자는 마치
혼수상태의 인물 속으로 들어가
그녀가 본 인생의 조각들을 함께 퍼즐처럼 맞춰보게 돼요.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을까?
-나의 선택은 누구를 다치게 했을까?
-내 인생은 내 것이었을까?
이런 철학적 질문이, 아주 부드러운 문장 속에 흘러들어 있습니다.
🌊 문장의 아름다움, 혹은 무서움
서맨사 하비는 영국 작가답게
차분하고 세련된 문체로 불안과 고요함을 동시에 표현해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
‘여기서 잠시 멈춰야겠다’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삶은 늘 그랬다. 끝을 알지 못해도 우리는 계속 돌아간다.
어떤 궤도 안에, 계속.”
“나는 나를 지키는 법을 몰랐고, 그래서 자주 사라졌다.”
🪐 왜 ‘궤도’인가?
이 책의 제목은 정말 잘 지어졌습니다.
‘궤도’는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한 번 벗어나면 방향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죠.
주인공은 그 궤도를 돌며 삶의 균형을 지키려 애쓴 과거를 떠올리고,
결국 그 궤도에서 이탈하는 과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책은 삶과 죽음 사이,
기억과 망각 사이,
진실과 자기기만 사이에 놓인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 책먹의 감상평
처음엔 낯설고 조금은 불친절한 서사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건 이야기라기보다 감정의 파동을 따라가는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의식의 흐름을 따라 펼쳐지는 문장들이
독특하면서도 잔잔한 파도를 만들어내요.
읽고 나면 오래 여운이 남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묻게 되죠.
“나는 지금, 내 궤도를 잘 돌고 있는 걸까?”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일반적인 줄거리 중심의 소설보다 문장과 감정에 집중하고 싶은 분
-시간과 기억, 자아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관심 있는 독자
-『올리브 키터리지』, 『기억 전달자』, 『토니 모리슨』 스타일의 정제된 서사를 좋아하는 분
-의식의 흐름을 문학적으로 경험해보고 싶은 분
🧾 책 속 기억 조각 몇 가지
“사람들은 죽는 순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채점한다고 했다.
나는 그 시험지를 자꾸 감추려 들었다.”
“어떤 기억은 너무 오래 되어서, 내가 지은 죄인지 누가 지은 건지조차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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